고토 다다마사: 야쿠자에서 승려로, 그리고 캄보디아 귀족이 되기까지
고토 다다마사. 그의 이름은 일본 최대 폭력조직 야마구치구미의 고위 간부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삶은 단순히 야쿠자의 틀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는 승려, 베스트셀러 작가, 자선사업가로 변신하며 캄보디아 귀족의 칭호까지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화려한 탈바꿈은 어두운 과거와의 단절보다는 또 다른 가면을 쓰는 과정일 뿐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고토 다다마사의 파란만장한 삶을 들여다봅니다.
어린 시절과 야쿠자로의 첫걸음
1942년 도쿄에서 태어난 고토는 4형제 중 막내였습니다. 그의 할아버지는 하코네 철도와 은행 설립에 관여했던 실업가였지만, 태평양 전쟁으로 가문은 몰락했습니다. 고토는 두 살 때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의 고향인 후지노미야시로 피난하여 할머니 손에서 성장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학업과 일을 병행해야 했던 그는 17세에 야쿠자의 세계로 발을 들이게 됩니다.
야쿠자로서의 부상
20대 초반, 고토는 마츠바카이 조직에 합류했지만, 다른 조직과의 충돌로 살인미수 혐의로 복역하게 됩니다. 출소 후 그는 일본 최대 야쿠자 조직인 야마구치구미에 합류하며 빠르게 영향력을 키워나갔습니다. 특히 1984년, 고토 구미라는 자신의 조직을 야마구치구미의 직속 조직으로 승격시키며 그 입지를 확고히 했습니다.
고토는 금융, 부동산, 건설 등의 위장 기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일본항공의 개인 최대 주주로도 알려졌습니다. 또한, 정·재계, 연예계와 깊은 관계를 맺으며 그의 조직은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이타미 주조 감독 습격 사건
1992년, 영화감독 이타미 주조는 야쿠자의 부당한 폭력을 신랄하게 비판한 영화 민보의 여자를 발표했습니다. 이에 격분한 야쿠자 조직은 그를 습격해 중상을 입혔고, 체포된 범인들은 고토 다다마사의 조직원들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고토와 그의 조직이 대중에게 악명 높은 존재로 각인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미국 입국과 FBI와의 비밀 거래
2001년, 간 질환으로 고통받던 고토는 간 이식 수술을 위해 미국 입국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야쿠자 조직의 수장이라는 이유로 입국이 금지된 상태였습니다. 그는 FBI와 비밀 거래를 통해 야마구치구미의 해외 자금 흐름과 간부 명단을 제공하며 입국을 허가받았습니다. 이후 UCLA 병원에서 간 이식 수술을 받았으나, 이를 둘러싼 논란이 일었습니다. 특히, 당시 많은 미국 환자들이 간 이식을 기다리다 사망한 상황에서 고토가 우선권을 얻은 점은 큰 비난을 샀습니다.
야쿠자 은퇴와 새로운 삶
2008년, 고토는 야마구치구미에서 제명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야쿠자 생활을 청산하고 승려가 되었으며, "운가추이"라는 법명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서전을 출간하고, 그 수익금을 캄보디아와 미얀마의 자선 단체에 기부하며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의 자서전은 20만 부 이상 판매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캄보디아로 이주해 봉사 활동과 사업을 병행했습니다.
캄보디아 정부로부터 백작에 해당하는 '옹냐'라는 귀족 칭호를 받은 그는 자신의 법명과 칭호를 결합해 스스로를 "옹냐 운가추이"로 부르며 정계 진출까지 모색했습니다.
범죄와 자선 사이
그러나 그의 새로운 삶 뒤에는 여전히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2015년, 미국 재무부는 고토 다다마사를 금융 제재 대상으로 지정하며, 그가 자금 세탁과 불법 활동을 통해 야쿠자 조직을 지원하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제이크 아델스타인과 같은 저널리스트들은 고토가 은퇴 후에도 야쿠자 조직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동남아시아에서 새로운 범죄 시장을 개척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고토 다다마사의 진실
고토 다다마사는 승려, 작가, 자선사업가, 귀족 등 다양한 모습으로 자신의 과거를 포장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본질은 야쿠자로 남아 있으며, 여전히 글로벌 범죄 네트워크와 연관되어 있다는 의혹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의 삶은 단순히 극적인 전환의 연속이 아니라, 그가 야쿠자로서 축적한 자원을 기반으로 한 또 다른 형태의 활동일 뿐입니다.
결론적으로, 고토 다다마사는 새로운 가면을 쓰며 살아가고 있지만, 그 속내는 여전히 과거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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