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음유시인을 뜻하는 단어들과 음유시인에 관련된 이야기
gleeman (중세의) 방랑 시인, 음유 시인
trouvere 트루베르. 11-14세기 북프랑스에서 활동했던 음유시인을 말하는 단어
trou·ba·dour 서정[음유] 시인 《11-14세기 무렵에 주로 프랑스 남부에서 활약한》(cf. TROUVRE);(일반적인) 음유 시인(minstrel)
중세 유럽에서 봉건제후의 궁정을 찾아다니며 스스로 지은 시를 낭송하던 시인.
12세기 초엽부터 남프랑스에서는 봉건 대제후(大諸侯)들 사이에서 궁정의 귀녀(貴女)를 중심으로 하는 좁지만 화려한 사회가 이루어져, 귀녀숭배와 궁정풍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연애의 이념이 생겨났다. 기사(騎士)인 시인은 그러한 환경과 이념 속에서 사랑하는 마음속의 귀녀에게 영원한 사모를 바쳐 그것을 때로는 난삽할 만큼 정교한 시형으로 다듬어 작곡하여 그것을 성(城)에서 성으로, 궁정·귀녀를 찾아다니면서 노래불렀다. 이러한 시인·기사가 트루바두르, 즉 음유시인이다. 400여 명의 이름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만 봐도 그 수가 얼마나 많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단 그 내용은 일정하며, 결코 보답을 받을 수 없는 귀녀에의 사랑의 탄원과 봉사의 맹세이다. 또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 해도, 이마에 키스를 받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시인은 그 '콩솔라멘테'라는 키스의 영예를 간직하기 위해 더한층 정성을 바친다. 그리스도교의 마리아 숭배를 세속적인 사랑에 대체한 것이며, 또한 봉건제의 주종(主從) 관계를 연애 관계로 꾸며낸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또 보는 견지에 따라서는 여성 이외의 전쟁과 종교가 그들의 영감의 원천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남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의 음유시인들의 이 서정시야말로 근세 유럽의 시의 원조가 되었다. 푸아티에 백작 기욤 9세가 그 원조이지만, 브라유의 성주(城主) 조프레 뤼델, 베르나르 드 방타두르 등이 잘 알려진 음유시인이다.
이 새로운 시의 경향은 북으로 옮아가서 북프랑스에도 퍼지게 되어, 이른바 '트루베르(trouvère)'라고 일컬어지며 음유시인들을 낳게 했으며, 그것들은 더욱 북으로 퍼져, 독일에도 파급되어 많은 미네(Minne:사랑)의 시인을 배출하는 기연(機緣)이 되었다. 독일의 음유시인은 미네젱거(Minnesänger)라고 했다. 또한 남방의 이탈리아에서는 '트로바토레(trovatore)'의 활약이 매우 컸으며, 기타 영국·에스파냐 등의 근대 서정시의 발생에 끼친 영향도 적지 않다.
jongleur 종글뢰르. 중세 프랑스,영국의 음유 시인
10세기 무렵에 나타난 직업적인 음악가의 한 계층을 가리킨다. 시장이나 네거리 또는 성을 떠돌아 다니면서 노래나 악기를 연주하고, 요술이나 곡예를 보여 주었다. 11-12세기에 이르러 트루바두르나 트루베르에 고용됐으며, 그들이 지은 가사와 선율을 노래하고 개작해서 실제로 악기로 반주를 했다. 14세기 무렵 그들의 사회적 지위나 전문적 인기의 상승에 따라 메네스트렐(menestrel)이라 하게 됐으며, 음악가 조합으로 발전했다.
minstrel 민스트럴. 중세의 음유 시인 (고어,시)에선 음악가,가수,시인이란 단어로 쓰였다고 한다.
라틴어의 미니스테리움(ministerium:勤務) 또는 미니스테리알리스(ministerialis:근무하는 사람)로부터 파생된 프랑스어 메네스트렐(ménestrel)에서 유래한 말로서 중세 때는 일반적으로 직업 연예인, 특히 귀족을 섬긴 음악인을 가리켰는데, 오늘날에는 현대의 경가극이나 쇼까지 포함해서 광의로 쓰인다. 이미 로마시대에 미무스(mimus)라 일컫는 신분이 낮은 희극배우가 활약하였고, 중세 유럽에 와서도 초기에는 익살과 곡예를 겸한 부랑자적 하층민으로 인식되었다.
12세기에 들어오면서 귀족의 보호하에 음악가 ·연예인으로 활약, ‘종글뢰르’로서 트루바두르(troubadour)나 트루베르(trouvères)를 섬기며 귀족 출신의 작품을 노래하고 악기로 연주하기도 하였다. 14세기가 되면서 메네트리에(ménétrier)라고 불리게 되어 지위도 향상되고 조합(ménestrandaise)도 결성하였다. 독일의 피리쟁이(Stadtpfeifer)도 이런 종류의 조합에 속한 악인이었다. 한편 19세기 미국에서는 민스트럴 쇼(minstrel show)라는 대중 음악극이 유행하여 흑인으로 분장한 백인가수가 노래와 춤으로 쇼를 하였고, S.포스터와 같은 작곡가가 이를 위해 작곡을 하였다.
bard 바드. 고대 켈트족의 음유 시인,방랑 시인
rhapsodist 고대 그리스의 음유시인
skald 고대 북유럽(스칸디나비아)의 음유시인
음유시인은 드루이드의 한 종류 중 하나로 중세에 기록자란 역사적 힘에 중세에 왕과 맞먹는 힘을 지녔던 자들입니다. 많은 당시 중세에 많은 역사들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은 음유시인의 노래를 통해서 였으며 또한 당시 현대의 인터넷과 비슷한 역할을 했던 자들로 당시 미디어 역할을 했던 자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중세 기사들 중엔 유명한 음유시인이었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예로 아서왕의 기사 중엔 음유시인이기도 했던 기사도 있으며 실제로 중세의 유명한 기사문학이 음유시인이면서 기사였던 이들 손에 나오게 됩니다.
=들녘출판사의 판타지 라이브러리 소환사에 있는 음유시인에 관한 내용=
시인(기록자)
시인은 전설이나 신화, 영웅담을 전승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문자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몇 세대에 걸쳐 형성된 과거의 기록을 전승할 수 있도록 훈련받았다. 시인은 마치 살아있는 기록장치 같았다. 나라의 법률과 종교의 교의, 왕가의 역사, 전쟁의 양상까지 모두 은율을 붙인 시가로서 암송하며 전했다.
시인은 훗날 '필라(전설이나 고사를 외어서 이야기하는 자)' '보에르지(악기를 켜며 노래하는 시인)' '바드(음유 시인)' 등으로 분화되어 발전해갔다. 시와 언어는 영혼이 모습을 나타낸 것이며, 드루이드는 주문처럼 초자연적인 힘이 깃들어 있다고 믿어졌다. 이 때문에 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바드는 높은 지위를 차지했다. 그들은 역시 드루이드의 일종이며 왕보다 상위 계급이었다. 시인의 기분을 상하게 한 탓에 자신의 목을 내놓은 왕이 있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출처:https://square.munpia.com/boPds_6/page/18/beSrl/182583
https://www.youtube.com/watch?v=PoQJM8SO6V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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